80년 전 그날, 10대들은 광복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잊혀진 '해방 일지'를 통해 되짚어보는 감격과 다짐
10대, 해방의 감격을 마주하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던 10대들에게 ‘해방 조국’은 그 자체로 벅찬 감동이었다. 본 기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1946년부터 1950년 사이에 발간된 학교 교지 18권을 통해 80년 전 ‘해방일지’를 소개하며, 당시 10대들이 느꼈던 기쁨과 환희,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들은 어떤 나라를 꿈꿨고, 그 염원은 지금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당시 학생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그들은 더 이상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갈망했다.
“저게 바로 조선의 국기구나!” - 태극기를 향한 뜨거운 외침
1945년 8월 15일, 서울 양정중학교(현 양정중·양정고)에 재학 중이었던 이동준 군은 경남 마산(현 창원시)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일제의 강제 동원을 피해 고향에 머물던 그는 마산 시내 곳곳에 게양된 태극기를 보며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극장 ‘공락관’에 높이 게양된 태극기를 바라보며, 그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을 보았다. 이듬해 발행된 양정중 교지에서 그는 “우리는 국기를 모르고 자라왔다. 조선 사람이면서도 참다운 조선을 알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하고 자랐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나는 이날의 감격에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않고, 저 깃발 밑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전력을 다해 나아갈 것이다.”라고 굳게 다짐했다.
새로운 조국 건설을 향한 뜨거운 열망
해방의 기쁨에 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은 조국 건립에 이바지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졌다. 경복중학교 학생들은 우리말로 발간된 첫 ‘교우회지’를 통해 그들의 열정을 드러냈다. 3학년 정재원군은 “봄이 왔다. 건국의 봄이 왔다.”라고 외치며, “우리 학생의 의무인 공부에 한층 힘써서 신(新)조선 국가 건설에 작은 힘이 되고 세계 선진국 문화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절차탁마(切磋琢磨), 용감하게 매진하자”고 썼다. 김동주군은 “국가의 주석(柱石)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장병철군은 청춘의 기쁨과 건국에 대한 희망을 묘사하며, 조국 독립을 향한 열망을 불태웠다.
잃어버린 우리말과 이름을 되찾다
학생들은 ‘우리말’과 ‘우리 이름’을 되찾은 데 깊은 감격을 느꼈다. 서울 양정중 4학년 이상규군은 “우리는 조선 사람이면서도 우리말을 못 쓰고, 우리 이름을 못 부르고, 우리의 공부도 못 했던 것이다.”라며, 해방이 그들의 깊은 바람을 풀어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마음 놓고 우리말을 쓰고, 글을 배우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라고 기쁨을 표현하며, “동포들아! 나를 버리고 건국 대업에 이바지하자!”라고 외쳤다. 교사들 또한 일본식 교명을 버리고 한글로 교명을 새기며,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만끽했다.
자유를 향한 외침: 태극기, 애국가, 그리고 무궁화
학생들은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들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광주공립공업중학교 김기섭은 해방의 순간을 “그때의 기쁨과 즐거움 자유로움은 천지를 뒤흔든 기세였다.”라고 묘사하며,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기미가요 대신 동해물과 백두산이 울려 퍼지는 장관을 표현했다. 1947년 개성 송도중 조덕환은 ‘해방’이라는 시를 통해 기쁨을 노래하며, 10대들의 가슴 벅찬 감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경복중 최한형은 무궁화가 국화임을 알고, 무궁화를 예찬하는 글을 남기며, 조국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당시 학생들은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을 맞이했지만, 우리 민족 스스로의 독립 투쟁 역사를 잊지 않으려 했다. 양정중 유진석군은 “우리 민족의 열렬한 투쟁이 없었다면 해방은 꿈에도 바라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3.1 운동과 독립 투사들의 희생을 언급했다. 백상기군은 “36년 만에 서광이 비치는 이때, 자기 마음 가운데에 있는 모든 불순한 마음을 극복하고 극기(克己)한 민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의 36주기 추도회에 참석하여,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 건설을 다짐했다.
80년 전 10대들의 뜨거운 열정: 잊혀진 '해방 일지'가 전하는 감동
10대들은 광복의 기쁨과 함께 조국 건설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품었다. 그들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잃어버린 언어와 이름을 되찾았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자주 독립 국가 건설을 향한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 80년 전, 10대들의 벅찬 감격과 다짐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자주 묻는 질문
Q.당시 10대들이 가장 감격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A.태극기를 처음 보고, 우리말과 이름을 되찾았을 때, 그리고 자유롭게 조국을 노래하고 칭송할 수 있게 된 순간에 가장 큰 감격을 느꼈습니다.
Q.10대들이 조국 건설을 위해 어떤 다짐을 했나요?
A.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졌습니다.
Q.이 글을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나요?
A.80년 전 10대들의 뜨거운 열정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독립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