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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 섬의 은밀한 파티: 재벌 3세의 몰락, 독일 경제를 뒤흔든 스캔들

Big News 2025. 7. 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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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경과 몰락의 시작

눈부신 태양이 ‘특산품’인 이탈리아 카프리섬. 내리쬐는 햇빛에 취한 것이었을까. 붉은 빛이 감도는 와인에 데인 것이었을까. 중년의 사내가 위태로이 요트 위에서 휘청이고 있었다. 감미로운 음악과 아름다운 바다. 완벽에 가까운 이중주에 사내는 더 없는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요트 안쪽에서 마른 근육질의 미소년 여럿이 갑판 위로 걸어 나왔다. 선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소년의 몸을 어루만졌다. 입을 맞추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만의 작은 섬에 있는 것처럼, 사내들은 서로의 육체에서 쾌락을 탐했다.

 

 

 

 

숨겨진 시선: 파파라치의 렌즈

그들만의 ‘소돔’(성경 속 쾌락에 빠져서 벌을 받은 도시)은 그러나 온전한 섬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어서였다. 사진기자들이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요트에 있던 중년 사내가 ‘거물’ 중 거물이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유명 사업가, 어린 소년들과 요트 위에서 엽색 행각.’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뽑힌 제목. 익명 보도였지만, 신상 공개는 시간문제였다. 바다 건너 독일에서 사업가의 정체가 밝혀졌다. 독일 최고의 기업 크루프, 그곳의 오너 프리드리히 알프레드 크루프(이하 프리드리히).

 

 

 

 

크루프 가문의 부상: 철강왕의 탄생

부잣집 도련님 크루프당대 독일인의 충격을 이해하기 위해선, 크루프 가문에 대한 약간의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크루프가 독일의 대표 기업으로 올라선 건 그의 아버지 알프레드 크루프 때였다. 알프레드가 주강(강철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특정 모양으로 변형하는 작업) 공장을 물려받았을 땐 그의 나이 고작 14살. 부친이 급작스레 사망하면서였다. 남겨진 건 빚과 조그만 공장. 어린 그에겐 버거운 것이라고, 공장은 이제 남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편견이 깨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프레드가 남다른 경영 감각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어서였다.

 

 

 

 

군수 산업으로의 전환: 대포왕의 야망

“우리의 미래는 무기에 있다.” 주강 사업의 현재는 밝았고, 미래는 더욱 찬란했다. 알프레드는 그러나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무기’ 산업이었다. 독일의 강자로 떠오른 프로이센. 알프레드는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되기를 꿈꿨다. 그 마중물에 ‘크루프’가 있기를 소망했다. ‘프로이센의 대장간’이 되어 통일 독일 제국을 일구는 것. “조악한 제품”이라는 악평에도 불구하고 크루프가 지속적으로 무기를 개발한 이유였다.

 

 

 

 

철의 통치자: 알프레드의 리더십

“화장실 갈 때도 허락받아야 한다.” 알프레드는 그야말로 ‘철인’과 같았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노동자를 통제했다. 충성 서약을 받는가 하면 화장실 갈 때조차도 작업반장의 허가를 받도록 요구했다. 인간의 생리적 본능까지 통제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었다. 노동자들이 학을 뗄만한 작업환경. 모두가 손가락질을 할 만한 경영태도. 그러나 그의 회사는 언제나 근로자로 넘쳐났다. 독일 모든 노동자들이 ‘크루프’에 들어가고 싶어 해서였다. 알프레드가 철저한 통제만큼이나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사내복지’였다.

 

 

 

 

카프리 섬의 은밀한 사생활

사업 스트레스에 찌들 때면 그는 언제나 이탈리아 카프리를 찾았다. 아름다운 태양이 모든 오염을 씻어주는 곳, 넉넉한 웃음을 머금은 사람들이 그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육체적 쾌락을 풀 수 있는 곳이었다. 이탈리아의 미남자들이 프리드리히 별장에 모여들었다. 때로는 수개월 동안 머물면서 젊은 남성들과 향락을 즐겼다. 프리드리히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탈리아에서의 일은 언제나 이탈리아에 두고 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스캔들의 폭풍: 몰락의 시작

프리드리히의 저택에서 새어 나오는 교성 소리를 언론인들이 포착하기 시작했다. 현지 주민들이 당국에 민원을 넣거나, 언론에 제보하면서였다.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 신문들은 익명으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1902년 가을부터였다. 진중한 뉴스는 엉덩이가 무겁지만, 가십은 날렵하기 짝이 없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익명의 뉴스가 독일 사회를 뒤흔들었다. 동성 스캔들의 당사자가 프리드리히라는 게 알려졌다. 보수성향의 가톨릭 신문부터 진보성향의 사회주의 신문까지 앞다퉈 이 소식을 다뤘다. 프리드리히가 황제 빌헬름 2세에 청탁해 신문을 압수 폐기해도 소용없었다. 당시 독일 형법상 동성애는 중대 범죄에 해당했다.

 

 

 

 

비극적 결말: 자살, 혹은…?

그의 주변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 마가리트가 남편의 호색 행각을 꾸짖자 프리드리히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처넣었다. 크루프의 동지들도 그에게 곁눈질할 뿐 진정으로 그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첫 보도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난 1902년 11월 22일. 에센의 주택에서 한 사내가 죽은 채 발견된다. 프리드리히였다. 48세의 젊은 나이. 뇌졸중이라는 발표에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평소 지병도 없었던 탓에 그의 죽음에는 ‘자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독일을 철의 제국으로 만든 철인이었지만, 심장과 육체는 미처 철이 되지 못해 으스러진 남자. 프리드리히 크루프였다.

 

 

 

 

핵심만 꿰뚫어보는 요약

독일 경제를 이끌던 크루프 가문의 후계자가 카프리 섬에서 벌인 은밀한 파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버지 알프레드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던 프리드리히는 무기 산업 확장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그의 사생활 스캔들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자주 묻는 질문들

Q.크루프 가문은 어떤 회사인가요?

A.크루프는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철강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무기 산업, 조선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특히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에 기여하며 '대포왕'이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Q.프리드리히 크루프는 왜 몰락했나요?

A.프리드리히 크루프는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미소년들과 동성 섹스 파티를 벌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스캔들은 그의 명성을 실추시켰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Q.크루프 가문은 현재 어떻게 되었나요?

A.크루프 가문은 현재도 엘리베이터, 산업 플랜트 등을 생산하는 티센크루프 AG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크루프의 스캔들은 크루프 가문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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