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최루탄의 기억,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뜨거웠던 민주화 열정
박형준 후보, 1980년 '서울의 봄' 시위 현장 속으로
1980년 5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뜨거웠던 '서울의 봄' 시기,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이었던 박형준 후보는 시위대의 선두에 섰습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박 후보는 시위 중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오른쪽 눈을 직격당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부동시 및 고도근시'로 병역 면제를 받았지만, 그는 "한쪽 눈의 시력은 손상됐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주의 가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이 생겼다"고 회고했습니다.

4·19 혁명의 불꽃, 마산에서 시작되다
1960년 3월 15일,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으로 시작된 마산 시위는 실종된 김주열 열사의 주검이 발견되면서 전국적인 '4·19 혁명'으로 번졌습니다. 당시 부산에서는 독재에 맞선 시위대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는 20년 후 '서울의 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열망의 씨앗이었습니다.

사투리 콤플렉스를 넘어, 거물 정치인으로
초등학교 시절, 부산 사투리 때문에 놀림받던 '촌놈' 박형준은 악착같이 표준어를 공부해 서울 아이들 못지않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열정의 DNA'는 이후 YS와 MB 정부의 주요 요직을 거치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은 글, 구술 자료, 인터뷰 등을 통해 톺아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부산시장 도전, 그의 인생 여정을 엿보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는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세 번째 시장직에 도전합니다. 정권 교체 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그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청에서 운동권, 언론인, 시민사회 활동가, 교수, 방송 패널, 국회의원을 거쳐 재선 부산시장을 역임하기까지, 그의 굴곡진 인생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최루탄의 아픔,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으로 승화시키다
박형준 후보는 '서울의 봄' 시위 중 최루탄을 맞으며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절감했습니다. 사투리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그의 열정과 끈기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은 부산시장으로서의 세 번째 도전에 대한 기대를 높입니다.

박형준 후보에 대해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Q.박형준 후보가 최루탄을 맞은 구체적인 장소는 어디인가요?
A.박형준 후보는 1980년 5월 13일, 서울 시청과 플라자 호텔 방향으로 행진하던 시위대 중 한 명으로, 플라자 호텔 벽에 맞고 튕겨 나온 최루탄에 오른쪽 눈 등을 직격당했습니다.
Q.최루탄 피격 후 박형준 후보의 건강 상태는 어떠했나요?
A.최루탄 피격으로 오른쪽 눈 시력이 손상되었으며, '부동시 및 고도근시' 진단을 받아 병역 면제를 받았습니다. 당시 실명 가능성도 있었으나 부모님의 노력으로 실명은 면했습니다.
Q.박형준 후보의 정치 경력은 어떻게 되나요?
A.박형준 후보는 국회의원과 재선 부산시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직에 세 번째 도전하고 있습니다.
